아빠되기/마음챙기기

아직 따뜻한 세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도다매비 2024. 6. 8. 23:20

우리 동네 마트에는 맥주 8캔을 14000원에 판다.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도 아닌데, 정말 기가 막힌 가격이다.
 
주말을 맞이해서 낮에 맥주를 먹을 생각에 신나서 집으로 가던 찰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맥주 캔을 감싸고 있던 종이 팩이 찢어져 버린 것이다. 
 
나의 소중한 맥주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드래곤볼처럼 흩어져버렸고, 나는 차를 피하며 맥주를 열심히 한곳으로 모았다. 
 
"후.. 나에게 어찌 이런 일이.." 
 
한번도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바닥에 부딪혀 옆구리에 구멍이 난 맥주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신나게 맥주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욕을 하며 불평불만을 쏟고 있었다.
 
행주대첩처럼 앞치마에 돌을 넣어 나르듯, 맥주 8캔을 윗 옷으로 감싸야하나?
어찌할지 모르고 우두커니 서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오토바이 기사님이 내 앞에 멈추더니 비닐봉지를 건넸다. 
 
"이거라도 써요! 아마 다 들어갈테니까~"
 
난 기사님에게 감사함을 전한 뒤 비닐봉지에 맥주를 담으며 불현듯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 정도쯤이야.." 
 
오늘은 오랜만에 부모님도 올라오셔서 맛있는 식사도하고, 
우리 아들 잘 크고 있는지 보러 병원도가고,
헬스장 가서 운동까지 한 완벽한 하루인데. 
 
이런 해프닝도 없으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이상하지. 


 
나는 분수쇼를 하고 있던 맥주를 그 자리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다행히 헬스장에서 마시던 일회용 컵이 있어서 맥주에 딱이었다.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술을 먹고 있자니 이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뭔가 일탈을 한 느낌이랄까?
 
문득 노홍철의 어록 하나가 떠올랐다.  
 
"위기나 시련이 닥치면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에게 또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런 시련을 주나"
 
맥주를 마시면서 나도 생각했다. 
나에게 또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하나..
 
날씨도 좋은데 술 기운도 올라오니,
이상하게도 투정 가득했던 마음 속에 즐거움이 자라났다.
 
어찌보면 그 동안 사사로운 순간들에 불평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순간일수록 다 지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어땠을까 싶으며 과거를 떠올려봤다.  
 
길바닥에서 먹는 맥주 맛이 참 좋았다. 
옆구리 터진 김밥도 맛있던데, 옆구리 터진 맥주도 꽤 괜찮았다. 


 
선뜻 비닐봉지를 전해주시던 고마운 기사님을 떠올리며,
나 역시도 누군가 터진 맥주를 줍고 있으면 꼭 도와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맥주를 함께 주워주면서 이런 말을 건넬 것 같다. 
 
"아니 맥주도 터지고 기분도 꿀꿀한데, 같이 터진 맥주나 드시죠?" 
 
도와줬다가 화만 돋구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순간들도 꽤나 재밌겠다는 이상한 상상을 하였다. 
 
조금의 여유만 있다면, 세상은 더 따뜻하고 즐거워 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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